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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2025년 6월 05일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알려진 피해자만 184명, 최악의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의 추악한 민낯] 방영될 예정입니다. 상황에 따라 방송 일정이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일정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대전 발바리 사건이란?
‘대전 발바리 사건’은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7년에 걸쳐 발생한 연쇄 강간 사건으로, 범인은 충청남도 대전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를 무대로 성범죄를 자행했다. 이 사건의 범인, 이중구는 157cm의 왜소한 체구를 가졌음에도 민첩하게 움직이며 경찰을 따돌렸고, 언론과 경찰은 그를 ‘발바리’라 부르기 시작했다.
초기 수사 당시 184건의 성범죄가 밝혀졌지만, 법적으로 인정된 것은 77건에 불과하다. 피해자 수는 공식적으로는 127명. 그러나 실질적인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이중구, 그는 누구인가?
이중구는 1960년 충남 공주에서 5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형제에게 학대를 당한 그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구두닦이, 신문배달, 스케이트장 종업원으로 일하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절도죄로 소년원을 들락날락했다.
20대에는 충남으로 돌아가 문구점을 운영하며 결혼했고, 이후 택시기사로 전업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가장이자 시민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지능적이고 잔혹한 연쇄 강간범의 얼굴이 숨겨져 있었다.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한 연쇄 강간의 실체
이중구의 첫 범행은 1998년 2월 7일. 그는 택시기사로 일하던 중 술에 취한 여성 승객을 뒤따라가 강간했고, 이 사건을 시작으로 연쇄 강간범으로 변모했다. 이후 그는 택시 승객, 원룸촌의 여성, 유흥업소 종업원, 가정주부, 임산부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범행했다.
경찰과 수사당국은 오랜 시간 동안 이중구를 검거하지 못했으며,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불안과 공포가 팽배해졌다. ‘누가 당했다더라’는 소문은 대전을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범인의 정체를 쫓는 7년의 집요한 추적
경찰은 1999년부터 피해자들의 진술과 현장에서 채취한 정액, 체액으로 DNA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유전자 감식 기술을 이용해 수십 건이 동일인의 소행임이 확인됐지만, 범인은 워낙 치밀하고 민첩했다.
2005년 1월, 대덕구 중리동에서 발생한 강간사건이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당시 피해자들은 냄새가 심한 20대 초반 남성이라고 진술했지만, 국과수 유전자 분석 결과 이중구로 특정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전국을 무대로 한 범행 확산
이중구는 2003년까지 대전에서 범행을 하다, 이후 청주, 전주, 용인, 대구 등 전국 단위로 범죄지역을 확장했다. 특히, 피해자의 집에 침입해 손가락을 수건으로 묶는 특이한 범행 수법 덕분에 수사팀은 과거 사건과의 연관성을 파악해나갔다.
범인은 CCTV와 블랙박스가 등장하기 이전 시기, 정보가 닿기 어려운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했다. 그러나 경찰의 끈질긴 수사와 유전자 감식이 결국 범인을 포위하기에 이른다.
이중구의 체포와 검거
경찰은 2006년 1월 10일, 이중구의 DNA를 특정했고, 그가 처가로 향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이중구는 이후 서울 강동구의 한 PC방에서 온라인 게임 '천년'을 하던 중 검거됐다.
검거 당시 이중구는 야구모자, 마스크, 무스탕,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으며 형사들의 등장에 저항하다 이내 체념했다. 그는 경찰서 압송 중에도 고개를 숙인 채 “잘못했습니다”만 반복했다.
이중구의 범행 수법 분석
이중구의 범행은 대담하고 지능적이었다.
- 새벽 운동을 가장해 원룸촌 탐색
- 출입문이 잠겼을 경우 우유배달원이나 보일러 수리공 가장
- ‘상희네 집이냐’고 묻는 등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접근
- 범행 후 “대전역이 어디냐”는 등 지리 정보를 모르는 척
- 피해 여성 전원 성폭행 원칙 고수
- 다수의 여성이 함께 사는 집에도 침입
그는 피해자의 휴대폰을 숨기고 유전자 감식을 피하려 강제로 목욕시키기도 했으며, 같은 여성을 3개월 후 다시 찾아가 성폭행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법정에서의 판결과 현재 상황
이중구에게는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살인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2026년이면 20년이 경과되므로 가석방 대상자가 되긴 하지만, 현재 법무부는 성범죄자에 대한 가석방 불허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피해자에게서 강제로 갈취한 돈 약 4천만 원은 사용하지 않고 통장에 적금해 두었으며, 검거 당시 그의 통장에는 1억 4천만 원이 예치돼 있었다. 이 돈으로 합의를 시도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 돈 줄 바에야 징역 20년 받겠다”며 합의도 거부했다.
대전 발바리 사건이 사회에 남긴 충격
이 사건은 피해자 수, 범행 기간, 범행 범위 모두에서 최악의 강간 사건 중 하나로 손꼽힌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침묵했고,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그로 인해 피해자 보호 시스템과 성범죄 수사 체계의 개선 요구가 촉발되었다.
이중구 사건 이후, 경찰은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성범죄자 신상 공개 등의 제도를 강화했으며, CCTV와 블랙박스의 급속한 보급으로 ‘발바리 사건’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마포 발바리 사건, 모방 범죄의 등장
이중구가 검거된 지 3개월 후인 2006년 4월, 서울 마포구·서대문구 일대에서 또 다른 연쇄 성범죄자 김재철이 검거됐다. 그는 19명의 여성과 아동을 강간했으며 ‘마포 발바리’라 불렸다. 모방 범죄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중구 사건의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대전 발바리 사건’은 단순한 강간 사건이 아니다.
7년 넘게 지속된 범죄와 수사의 실패, 그리고 피해자 보호 시스템의 미비는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중구가 남긴 성범죄의 참혹함과 사회적 파장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피해자의 용기 있는 목소리와, 국가의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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