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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 미제로 남은 최악의 아동 대상 범죄

by 굿데이라라 202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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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BS 오늘의 셜록 - 사인펜 살인마

 

이 내용은 2025년 5월 22일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전례 없던 엽기적 범죄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 방영될 예정입니다. 상황에 따라 방송 일정이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일정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1975년 여름, 대한민국 부산에서 벌어진 참혹한 연쇄살인 사건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7세 여아 김현정 양과 5세 남아 배준일 군이 불과 며칠 간격으로 잇따라 살해된 사건은 당시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고, 박정희 대통령까지 직접 수사 지시를 내릴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범인을 끝내 검거하지 못하고 1990년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1975년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의 전말과 수사과정, 그리고 이후의 유사 사건까지 총체적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 사인펜 살인범의 낙서 '후하하 죽였다'

 

사건 개요

  • 일시: 1975년 8월 20일~24일
  • 장소: 부산직할시 서구 장림동, 동구 좌천동
  • 피해자: 김현정(여, 7세), 배준일(남, 5세)
  • 사건 성격: 유괴 후 살인, 시신에 낙서, 연쇄범죄 정황
  • 결과: 범인 미검거, 1990년 공소시효 만료, 미제 사건으로 종결

 

김현정 양 피살 사건

1975년 8월 20일 저녁 8시, 부산 서구 장림동에 사는 7살 김현정 양은 늘 그랬듯이 핫도그를 사기 위해 집 근처 구멍가게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고, 가족과 주민들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다음날 새벽의 비극

 

다음 날 새벽 5시 45분, 중구 동광동의 용두산공원 숲속에서 한 관리인이 팬티 한 장만 입은 채 숨져 있는 소녀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발견된 시신은 김현정 양이었고, 사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시신의 배에 검은 사인펜으로 쓰인 낙서였습니다.

"범천동 이정숙이가 대신공원에서 죽었다."

 

시신의 결박은 아이의 옷을 찢어 만든 끈으로 이뤄졌고, 손발을 단단히 묶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 명백한 타살 사건에 대해 “걸인 여아의 약물중독 내지 식중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보고를 상부에 올렸고, 이에 대해 김현정 양의 가족은 분노를 금치 못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 김현정 양

 

8월 23일 밤 11시, 대교파출소에 걸려온 전화 한 통. 한 남성이 자신이 김현정 양을 살해했다고 자백하며, “수사를 잘해라. 나를 잡을 수 있겠냐? 7698이다. 복창해라.”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 '7698'은 놀랍게도 이전에 미수사건 피해자 이정숙 양의 집 전화번호 뒷자리였습니다.

 

숨겨진 살인미수 사건 – 이정숙 양의 생존

놀랍게도 앞서 낙서에 적힌 ‘이정숙’은 실존 인물이었고, 사건 발생 직전 같은 범인에게 납치되어 대신공원에서 4시간 동안 학대와 결박을 당하다 극적으로 살아난 피해자였습니다. 그녀는 가해자에게 "주인님", "아버지"라고 불러달라는 요구를 받았고, 끝내 목이 졸린 채 버려졌지만 등산객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습니다. 범인은 이정숙 양이 죽은 줄 알고 낙서를 남긴 것이었습니다.

 

배준일 군 피살 사건

김현정 양 사건 발생 나흘 뒤인 8월 24일, 동구 좌천동에서 또 한 명의 아이가 실종됩니다. 5살 배준일 군은 집 앞에서 놀다 실종되었고, 다음 날 오전 6시, 충무동 부산공동어시장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손발이 결박된 채 생선상자 속에 숨겨져 있었으며, 배에도 사인펜으로 ‘후하하 죽였다’는 섬뜩한 낙서가 적혀 있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 배준일 군

 

공통점과 동일범 정황

두 피해 아동 모두:

  • 유괴 후 손발 결박
  • 교살
  • 옷 일부를 찢어 만든 끈으로 묶임
  • 시신 배에 사인펜 낙서
  • 낮 시간대 주택가에서 실종
  • 성적 학대는 없었으나 범행 동기가 비정상

이를 통해 경찰은 동일범 소행으로 판단하고 몽타주와 공개수배에 들어갔습니다.

 

목격자의 결정적 진술

배준일 군 사건에는 다행히도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한 택시기사는 좌천동에서 한 남성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충무동 수산시장 근처까지 태워주었다고 진술했으며, 그 아이가 바로 배준일 군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증언은 범인에 대한 몽타주 작성을 가능하게 했고, 전국에 10만 장 이상 배포되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 사인펜 살인마 몽타주

 

범인의 심리 분석

전문가들은 범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 지적 수준은 고졸 이상
  • 치밀한 준비와 범행 대담성
  • 성도착적 성향, 소아성애 증후
  • 정신 이상 가능성 농후

대한민국 최초로 시신에 메시지를 남긴 사례 중 하나였으며, 범인의 왜곡된 과시욕과 광기어린 심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이후의 유사 사건과 오해

사건 발생 3개월 뒤인 11월 30일, 또 다른 어린이 두 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영선국민학교에서 8세 이영주 양이, 감천동에서는 13세 이경진 군이 각각 살해되었고 범인은 이영주 양의 외삼촌 박홍근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은 초기에 8월의 사건과 연관성이 제기되었지만, 조사 결과 별개의 사건으로 결론 났습니다.

 

사건의 종결과 미제로의 전락

당시 형사소송법에 따른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 김현정 양 사건: 1990년 8월 20일 공소시효 만료
  • 배준일 군 사건: 1990년 8월 24일 공소시효 만료

1990년을 끝으로 이 충격적인 연쇄살인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시각

 

이 사건은 여전히 대한민국 범죄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하고, 아동 안전의 중요성을 일깨운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2000년대 이후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전했지만, 당시 증거가 충분히 보존되지 않아 재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마무리

1975년 여름 부산에서 벌어진 두 건의 아동 연쇄살인 사건은 피해자 가족과 국민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이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미제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후대에게 아동 보호와 사회적 감시 체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길, 그리고 유사한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사건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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